‘저는 그런 의미로 당신을 좋아합니다’를, 차근차근, 천천히 어필. “아이고. 열이 안 떨어져 어쩝니까.” “괜찮은데…….” “괜찮기는요. 일단 주무시고 계십시오, 곧 약선에게 약을 받아 돌아오실 겝니다.” 을 해보기도 전에, 야심찬 외출 이후 대차게 앓아누운 가람은 여전히 제자리였다. 머리가 뜨끈하고, 목구멍이 칼칼하고. 눈알이 저릿저릿 아파 붕 뜬 듯한...
진헌은 이제껏, ‘옳고 그름’에 있어 망설임을 느꼈던 적이 없었다. 모든 건 순리대로 흘러간다. 어떻게든 바꾸어 보겠다고 별짓을 다 하더라도, 결국 일어날 일은 일어나고야 만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황공하오나, 어버이께서는 지금 출타 중이시옵니다.” 그 긴긴 수련도 아무짝에 쓸모없구나. 강 앞에서 길게 울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볼 걸 그랬다. ...
찻자리를 하다 말고 훌떡 사라졌던 날 이후, 진헌은 부쩍 바빠졌다. 아닌가. 바쁘다는 말을 핑계로 가람을 피하는 것도 같았다. 가람이 잠들만큼 늦은 시간에야 돌아오시어 말없이 머리를 쓰다듬고 나가는 게 그 증거였다. “이여얼. 우리 슈스 한강까지 나오고, 다 컸는데? 볼캡에 마스크에 연예인 저리가란데?” “작작 해. 농담 받아칠 기운도 없어.” “농담 아닌...
용, 산군 같은 이승신이나 저승차사들은 개별의 이름을 만들어 쓴다. 차사들이야 강림 일직 월직 아래로 평차사들 구분이 안 되니 그렇다손 치더라도, 산 이름 강 이름이 다 있는데도 굳이 이름을 붙여 서로를 불렀다. 탐랑성이 생각하기에 그는 퍽 번거로운 일이었으나, 어차피 먼 동네 일이니 딱히 신경 쓰지는 않았었다. 그러시든지 마시든지. 제 할일만 잘하면 그만...
누군가 진헌에게 ‘당신의 낙은 무엇입니까’라고 묻는다면, 망설임 없이 가람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가람아.” “네에.” “……아까부터 뭘 하고 있는 건지 말해주지 않겠느냐?” “음. 애정표현이요?” “애저, 뭐라?” 서고 옆 집무실의 서안에 앉아 소를 읽는 진헌의 옆에서, 반듯한 책상다리 끝 무릎을 팔락대는 가람은 대충 한 시진(약 2시간)째 말없이 진헌을...
하늘에는 상제, 바다에는 용왕. 사람들은 흔히 이 둘을 놓고 ‘누가 최강자인가’를 따지곤 했다. 사실 그것들은 의미 없는 일이었다. 상제도 용왕도 사람의 편의에 따라 붙은 이름일 뿐, 아예 권역이 다르고 그에 따른 규율도 다른데 위아래가 어디 있단 말인가. 아주 긴 시간 그렇게 생각해왔으나, 대충 요 오백 년 사이 용왕의 심기는 딱히 편치 않았다. “어버이...
자고로 용과 범은 지란지교하지 못한다는 이야기가 있다. 대개는 사실이고, 아주 가끔은 아니었다. “어버이시여. 어찌하리까, 이러다 소가 커지기라도 하면…….” “이런 염병할. 어쩌긴, 지금 당장 가서 전해. 영산강 용 체면이 있지, 무슨 무등산 급도 아니고 꼴랑 가야산 산군이랑 투닥거리다 물을 일으키는 게 말이 돼? 이걸 확 가서 쥐어박을 수도 없고.” “...
해가 서산으로 다 넘어가야만 눈을 뜨는 동자개가 퀭한 얼굴로 가람을 마중했다. 물고기지만 격을 얻은 권속인지라, ‘거의 못 잠. 몹시 놀람. 대단히 피로함’을 나타내는 표정이 아주 생생했다. “이곳에서 꼼짝 말고 기다리시라 하셨습니다.” “그치만…….” “가람 도령. 강아래 모든 권속은. 이번 일에 관하여, 그 어떤 의견도 얹을 수 없습니다. 어버이께서 허...
“가람이? 요 며칠은 만난 적이 없는데… 당신은요?” “여기도 코빼기 안 비친 지가 한참이다.” 이호와 인오가 어리둥절하게 서로를 보다가, 걱정스러운 낯을 하고 진헌을 돌아보았다. “그 애가 지금까지 네 그늘을 벗어난 적이 잘 없는데. 정청강에 있었으면 네가 찾을 일이 없을 테고. 혹시 태화강으로 마실을 나간 게 아니냐?” “아뇨. 연통을 넣어봤는데……...
가람은 진헌의 병구완을 허락받았던 적이 지금까지 한 번도 없었다. 애초에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간호한다 한들 소용없기도 했지만, 어린애가 볼 꼴은 아니라는 이유에서였다. 아픈 분에게 떼를 쓰고 싶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가만히 있고 싶지도 않았다. 곁을 지킬 수 없다면 가능한 일을 하는 수밖에. 세상에 나가보기로 마음먹은 가람은, 일...
진헌은 병이 낫기를 바라지 않았다. 강의 불청객이 된 사람 중에도, 살기를 바랐으나 불의로 오게 된 자들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주고받는 것이라 여겨왔다. 그런데 이번엔 좀 요란했다. 어째 해를 거듭할수록 아픔이 날카로워졌다. 직전 정도면 어떻게 버텨볼 만할 것을. 이번에 진탕 앓을 때는 정말 어떻게 되는 줄만 알았다. 신이 죽는 방법은 소멸밖에 없는데...
BL 씁니다. / 불법사이트 이용자 OUT / forthetipp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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